생년월일 | 1999년 5월 17일 |
성별 | 수컷 |
조교사 | 마츠다 히로요시(松田博資) |
생산지 | 홋카이도 노잔 팜 |
경주성적 |
중앙 17전 5승
지방 7전 5승
해외 1전 0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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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에서 모래의 수령으로
JBC 클래식 3연패를 포함해 G1 7승
국내에서는 씨수마로 활약
● 잔디인가 더트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쿠로후네, 아그네스 디지털, 이글 카페등 거의 같은 시기에 잔디ㆍ더트 양쪽의 G1을 이긴 그 남자. 그 흐름에 호응하며 등장한 것이 바로 어드마이어 문이라는 사내였다. 그의 혈통을 보자면 나쁘지 않았다. 어미는 당시 유키노 비진과 라이벌이었던 베가(ベガ), 그리고 아비는 미국에서 G1을 3승한 본격파인 팀버 컨트리( ティンバーカントリー). 우마무스메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 유명한 어드마이어 베가와 반형제지간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말은 어느 노선을 걸어야 했을까? 아마 진영은 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혈통은 나쁘지 않았지만, 팀버 컨트리는 미스터 프로스펙트계, 그리고 베가는 암말 클래식 2관 출신이었기에 더트로 할지, 혹은 잔디로 가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고 본다. 고심 끝에 진영은 그가 잔디를 뛸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스케줄을 잡기 시작. 첫 스타트인 신마전은 더트였지만, 한동안 그는 이후 잔디 노선을 걷게 된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아무도 피가 다른 능력의 멀티 플레이어가 탄생한 것을 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3세, 클래식의 벽은 너무 높도다
신마전인 더트 1400m에서 데뷔한 어드마이어 문은, 2착마를 8마신으로 찍어 눌러 압승. 하지만 계속되는 교토 2세S에서도 낙승을 해서, 당연히 왕도 클래식 노선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기대에 호응하는 듯 아사히배 S를 무패로 승리. 잔디 2세 챔프로써 그 존재를 보여준 것이었다. 당연히 세간에서는 최우수 2세 수마로 꼽히는 등 엄청난 기대를 하게 되었지만, 그때부터 그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일단 사츠키 상부터 살펴보자. 사츠키 때의 그의 인기는 4위. 배당은 10.7배. 이 당시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것은 이후 보드카의 아버지, 타니노 김렛(タニノギムレット)이었다. 하지만 그런 김렛조차도 3착을 했을 정도였고, 이때 어드마이어 돈은 수송으로 마체가 크게 줄어서 상태가 썩 좋지 않았던 상태.
그래서 다음 기회로 일본 더비를 노렸지만, 하필이면 이번엔 김렛과 더블어 당시의 강호였던 심볼리 크리스에스(シンボリクリスエス)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 비해 어드마이어 돈은 수송으로 10키로가 더 빠져서 더욱 절망적인 상태였고, 결국 더비의 주인공은 김렛이 되어, 김렛의 기수였던 타케는 일본 경마사 최초로 더비 3승 기수가 되었기에, 결국 그가 나설 자리는 없었던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킷카쇼에서는 4착. 더 이상 클래식 노선은 그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 잔디에서 더트로, JBC 클래식
여기서 진영은 신마전의 달리기를 상기하여 더트 노선으로 시프트. 더트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마침 그 때 팀버 컨트리 자마들이 더트 중상에서 좋은 성적을 보였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도 절호의 기회. 그 기회는 킷카쇼에서 불과 1주일 후인 JBC 클래식이었다. 무모하다고 다들 생각했지만, 약 1년 만의 더트전을 출주한 그 사내. 그것이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킬 것은 아무도 몰랐다.
더 이상의 퇴로는 없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킷카쇼의 영향이라서 그럴까, 인기는 2위.
게다가 킷카쇼 바로 1주 후 달리는 것이라서 다리는 더욱 무거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달렸다. 새로운 시대를 향해.
"어드마이어 돈이 나란히 왔다!"
"어드마이어 돈 압승! 2번의 어드마이어 돈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2착마 프리에미넨스(プリエミネンス)와 7마신차.
아무도 그를 따라 잡을 수 없었다.
그의 기수인 후지타 신지(藤田伸二)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진정한 모래왕이 바로 이 순간 탄생한 것이다.
● 더트 2연패, 모래의 강자로 거듭나다
JBC 이후부터 그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이후 재팬 컵 더트에서는 3착을 보여주긴 했지만, 이것은 결과보다도 그 과정을 보면 놀랍다고 할 수 있었다. 당시 같이 참전했던 골드 알류어(ゴールドアリュール)는 재팬 더트 더비, 그리고 더비 그랑프리라는 G1 2승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인기 2위. 이 알류어를 누르고 인기 1위를 찍은 것이 바로 어드마이어였던 것. 이때부터 이들의 경쟁 구도가 시작된다.
한번 페브러리에서 11착으로 나락을 찍은 그는 장기 휴양에 들어갔고, 이후 기수도 후지타에서 안도 카츠미(安藤勝己)로 변하면서 점점 모래의 강자로 거듭나게 도니다. 그가 복귀한 것은 엘름 S. 하필이면 이때 그의 호적수였던 골드 알류어는 호흡 장애로 은퇴를 하면서, 이제 그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었다. 엘름에서 1착을 찍은 그는 이어서 마일 CS, JBC를 1착하면서 2연패를 차지하게 된다. 그 다음 경기인 재팬 컵 더트에서도 모두가 1착을 기대했지만, 불과 4cm라는 차이로 아쉽게 2착을 기록하게 된다.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더트마에 대한이미지가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그때까지는 더트마라고 하면 근육질이 붙은
파워 타입의 인상이 강했습니다만,
어드마이어 돈을 만나며 자신의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안도 카츠미(安藤勝己) 기수와의 인터뷰 중
● 해외는 강했다, 하지만 국내는 질 수 없다
이후 해가 흘러 04년도. 그는 다시 한번 페브러리S에 출주하게 된다. 작년에는 11착이라는 창피함을 겪어야 했지만, 올해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로 한 것. 그리고 그는 다시 날아올랐다.
인기는 1위. 배당은 1.3배.
페브러리 S중 역대급으로 가장 낮은 배당.
2위였던 작년이랑 비교하면 대세는 그의 편이었다.
남은 것은 그 대세에 기대어 호응을 해주는 것 뿐.
이글 카페(イーグルカフェ)라는 강호가 있기는 했지만, 이제 그는 두렵지 않았다.
"아직 모래의 길은 멀다!"
"자, 어드마이어 돈! 세계로! 두바이로!"
"어드마이어 돈! 어드마이어 돈!! 어드마이어 도온!!!"
재팬 컵 더트 당시 해설 당시 야노 아나운서가 말한 그 한마디.
세계로 가는 길이 열렸다라는 것은 바로 이걸 말한 것일까.
이것이 바로 일본 최강의 더트마였다.
그 이후 그는 더 넓은 더트전을 향해 두바이로 향하게 되지만, 1위와 4.9초나 차이나는 결과로 8착. 결국 너덜너덜한 상태로 국내에 복귀하였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여 준 것은 해외였을 뿐. 국내에서는 다시 놀라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바로 휴양 휴 복귀한 제왕상에서는 코 차이로 승리. 그리고 이어서 다시 한 번 JBC에서 1착. 바야흐로 JBC 3연패라는 엄청난 위업을 달성한 것이었다. 교류 G1 포함으로 총 7승이긴 했지만, 이것은 왕년의 심볼리 루돌프나 티엠 오페라 오에 견줄만한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새로운 시작, 한국에서 씨수마가 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강자라도 서서히 꺾이는 법. 그 역시 그런 흐름을 피할 수 없었다. 잔디 노선으로 변경한다고 선언한 진영은 오랜만에 아리마 기념에 출두했지만 결과는 7착. 그리고 다음 해 페브러리에서는 5착. 이런 하락세의 흐름이 계속되면서 심지어는 휴양 중 발굽 문제도 발생. 결국 카시와 기념을 마지막으로 그의 경주마 일생은 여기서 끝이 나게 된다.
그런 그 역시 다른 말처럼 씨수마 생활을 하게 되면서 80두 정도의 말들을 낳게 된다. 하지만 씨수마로써의 기량은 없었던 것일까. 그와 호각을 다루었던 골드 알류어는 스마트 팔콘 같은 더트 최강마들을 낳았지만, 이 당시 그는 알류어와 비교하면 마땅한 말들을 낳지 못해서 결국 제주도라는 한국 땅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그렇게 2011년 2월 13일. 그는 한국의 번식마로 되면서 제주도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데, 이후부터 여러 번 목장을 옮겨서인지 교배 횟수가 확 줄어들게 된다. 그나마 한국에서 활약한 자식이 있었다면, 바로 천지스톰. 서울마주협회장배라는 G3 대상전을 우승하면서 그의 영광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고, 결국 이 말은 국내에서의 어드마이어 돈 자마 중 가장 큰 활약을 한 말로 거듭나게 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22년 9월. 국내 송암축산에서 조용히 지내고 싶었던 그였지만, 상태가 너무나 악화되어서 결국 안락사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안락사는 진짜인지 아직도 이야기가 있지만 사인은 불명이기에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년에 비하면 쓸쓸한 말로인 것은 어쩔 수 없다랄까.
다음으로 내디디다
주위로부터의 기대는
신경쓰지 말자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한 기대는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도록 하자
다만 결과를 낸다고 해도
의기양양한 것은 한순간의 일
곧 등을 펴고
다음에 풀어야 할 과제를
찾아 내딛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커리어 플랜
JRA 2019년 명마의 초상 중
이것은 한때 모래의 수령으로 자리는 잡았으나, 03~04년도 경마 암흑기로 인해 그 인지도가 가려진 어느 경주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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