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년월일 | 1987년 4월 10일 |
성별 | 수컷 |
조교사 | 우메다 야스오(梅田康雄) |
생산지 | 홋카이도 미야비 목장(清水牧場) |
경주성적 | 35전 10승 |
미녀를 괴롭히는 미운 녀석
마일 챔피언쉽 연패, 거친 개성파의 히어로
사람의 지혜를 넘는 개성과 강함으로 어쩔 도리가 없도다
● 주전 기수조차도 까다로왔던 영웅
데뷔 3번째 레이스에서 첫 승리를 거두고, 5번째 레이스에서 2승으로 마크. 하지만 그로부터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연투로 G1인 한신 3세S에 도전하고, 2착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키사라기 상과 스프링S에서 완패를 만끽하고, 단거리 노선으로 시프트. 여기에서 본래의 자질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본래의 자질이 들어나기 전, 그와 같이 함께한 기수들은 참으로 고통스러울 따름이었다. 그의 주전 기수는 키시 시게히코(岸滋彦)였지만, 그가 달렸던 경기 중 좋은 성적을 거둔 경기는 타지마 요시야스(田島良保)나 타케 유타카(武豊)가 기승을 하였고, 키시가 달렸던 신마전 같은 경우도 그가 제멋대로 폭주를 한 것이라 고삐를 놓았을 정도. 말하자면 그는 키시 기수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 단거리로 두각을 드러내다
이후 크리스탈 C와 아오이 S에서 연승을 하고, 뉴질랜드 T 4세 S에서도 2착. 세대 굴지의 스피드를 주위에 인식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같은 해 가을에는 좋은 결과를 드러내보이진 않았지만, 고마가 되자 마일러스 C를 제압해 존재감을 드러내었고, 야스다 기념에서도 10번 인기의 저평가를 뒤엎고 2착으로 분투하였다.
하지만 여기서도 또 문제가 있었으니, 이번에도 기수 문제였다. 여전히 키시 기수가 아닌 타 기수가 달렸을 때는 좋은 성적이 나왔는데, 정작 본인이 탈 때는 그렇지가 않았기에 점점 대립 관계는 심해졌고, 결국 이로 인해 우메다 조교사는 대타 기수를 이후 넣지 않았다고 한다.
성격조차도 무작정 페이스를 올리면서 달리고 싶을 때 달리고, 나태해지고 싶을 때 나태해지는 인상을 주었다. 인기가 있으면 달리지 않는다거나, 인기가 없다면 달린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좋은 페이스가 계속되는건가, 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고 슬럼프가 긴 것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던 것. 경마 팬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면 요컨대 언제, 어디에서 이 말을 노려야할지 전혀 모르겠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었다.
(중략)
스스로 납득해서 이긴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말의 진짜 힘은 마지막까지 모른 채 끝났습니다.
키시 시게히코 기수의 인터뷰 중
● 루비를 울린 그 남자, 다이타쿠 헬리오스
그런 상황이었지만 그가 간간히 좋은 성적을 낸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고, 심지어 이 때 그는 새로운 칭호가 생기게 되었다. 이름하여 암말을 울리 말.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 타카마츠노미야배는(高松宮記念) 2000m 였는데, 이 거리가 길어 보이는 경기를 우승하면서, 당시 1번 인기였던 다이이치 루비(ダイイチルビー)를 꺾었던 것.
왜 이게 큰 영향력이 있던 것인가? 물론 헬리오스가 1착을 한 것도 중요하기는 했지만, 이 당시 다이이치 루비가 인기가 컸던 이유는, 잇토 - 하기노 탑 레이디 - 다이이치 루비의 모계 3대 타카마츠노미야배 제패를 막아 버렸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코 차이로 패배를 겪은 것이었기 때문에 타격이 무척이나 컸던 것.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유감스럽게도 루비에게 있어선 더 큰 시련이 다가오고 있던 것.
그 시련의 이름은 바로 마일 챔피언 쉽. 그는 가을에는 마이니치 왕관에서 2착, 스완S 9착을 격어 마일 챔피언 쉽에 도전을 하게 되었는데, 이 레이스에서도 1번 인기가 바로 다이이치 루비였던 것이다.
이번에는 질 수 없었다. 기필코 질 수 없었다.
조모, 어머니, 그리고 자식이라는 3대의 영광을 깨버린
다이타쿠 헬리오스를 용서할 수 없었던 다이이치 루비.
그래서였을까, 다시 한번 루비는 인기 1위를 얻었고,
헬리오스는 인가 4위를 얻으며 모두가 루비에게 기대를 한 듯 하였다.
하지만 하늘은 그의 편이 아니었던 것일까.
"다이타쿠 도주! 다이타쿠 도주! 다이타쿠가 선두다!"
"이런, 다이이치 루비! 겨우 오는 것인가? 루비가 힘들어한다!"
"따라잡고 있다! 하지만 다이타쿠가 선두다! 2착은 다이이치 루비!!"
결과는 2마신 반 차이. 다이타쿠의 완승.
빠른 선두의 적극적인 책략으로 당당하게 제압을 하였다.
다이타쿠에게 있어선 마침내 G1 타이틀을 처음으로 손에 넣은 것이었다.
정곡을 찌를 때의 강함을 찾은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게다가 다음 해에도 G2를 2승하였고, 가을에는 마일 챔피언쉽을 연패. 고정다운 고장도 없었고, 아리마 기념에 2년 연속 참전하는등 폭 넓은 활약을 보여 주었다. 심지어 92년도의 마일 CS에서도 1번 인기가 신코 러블리(シンコウラブリイ)였는데, 이 말 또한 암말이었기에 암말을 울린 말이 참으로 제격이라 할 수 있었다.
● 씨수마로써도 변덕스런 그 말
하지만 이런한 그에게도 마지막이 있는 법. 6세가 된 그는 아리마 기념을 마지막으로 경주마로서의 인생의 막을 내리게 된다. 원래는 스프린터S를 은퇴 경기로 하려고 했지만, 당시 그의 마주였던 나카무라가 병으로 인해 병실에서 누워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그의 달리기를 보고 싶다고 해서 부랴부랴 아리마 기념에 출두를 하게 된 것. 이 아리마 경기가 바로 메지로 파마와 고꾸라져버린 그 경기. 이후 세간에서 이들은 바보 콤비로 같이 불리게 된다. 결국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식이 거행되었고, 그렇게 그는 씨수마로써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가 씨수마가 될 당시, 그가 있던 목장에는 세간에서 화제가 자자했던 이나리 원이나 미호노 부루봉이 같이 있었기 때문에, 늘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수태율 같은 경우도 첫 년도부터 90% 이상이었고, 이후에는 스프린터S에서 대파란을 불러 일으켰던 다이타쿠 야마토(ダイタクヤマト)를 내보내면서 여기에서도 저력을 보여 주었다.
그렇지만 씨수마가 된 이후에도 그의 관리는 너무나도 힘들었다고 한다. 수태할 때는 모두가 기뻐했지만, 반대로 방목을 할 때는 아무 곳에서나 뒹굴 때가 많아서 손질이 힘들었다고 한다. 한번은 방목 중에 너무나 지나치게 뒹굴어서, 사람들이 걱정할 정도의 상태를 보여 주었는데, 알고 보니까 그저 뒹굴면서 건초를 씹어 먹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도 결국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했으며, 이후 08년도 12월 12일 이른 아침에 숨을 거두었다.
머리를 들고 이를 버득이며, 달릴 때도전혀 리듬이 없었던 다이타쿠 헬리오스.
그리고 언제 레코드를 펑펑 찍고,
압승해 버리는 다이타쿠 헬리오스.
그리고 자신과 같은 변덕스런 자식인 다이타쿠 야마토를
배출한 다이타쿠 헬리오스.
그의 개성과 그 강함은 이제 나조차도 논할 레벨을 넘었다.
마권만이 아니라, 원고를 쓰는 것 조차
이제 질려 버렸을 정도다.
저서 60years 명마전설 중, 키타노 요시노리(北野義則)
이것은 거친 달리기와 개성파로 모두의 히어로가 되면서, 지금도 많은 경마 팬들에게 강한 기억을 남겨준 어느 경주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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