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년월일 | 2001년 5월 3일 |
성별 | 수컷 |
조교사 | 릿토 ㆍ 스미이 카츠히코(角居勝彦) |
생산지 | 홋카이도 하야키타 노잔 팜 |
경주성적 | (중앙) 29전 5승 / (해외) 2전 1승 / (지방) 1전 0승 |
국화상에서 개화한 스테이어
첫 오스트레일리아 대표마로
훌륭하다, 그리고 만세 "BONZAI"
● 아직 그의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시절
2세 가을에서 데뷔를 하고, 첫 승리까지 6전이 필요했던 말이었으나, 그 반년 후에는 G1말로 등극. 그런 성공 스토리를 재현한 것이 바로 델타 블루스다. 아버지는 댄스 인 더 다크에게 물려받은 강인한 스테미너는, 미승리전 당시 잔디 2400m의 특별전에서 격상 도전을 했을 정도로, 진영에서도 충분할 정도로 파악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첫 무대였던 1600m 데뷔전은 7착. 이 레이스 이후부터 그는 2천 미터 이상의 거리를 뛰게 된 것이었다. 이후 아오바 상에서 13착을 하는 등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이후 착실하게 스텝 업을 하여 3승을 마크해 임한 클래식 최종전에 임하게 된다.
● 스테이어의 전설이 시작되다, 04년도 킷카쇼
당시에는 소노다(園田) 소속이었던 이와다 야스나리(岩田康誠)와의 콤비로 좋은 위치에서 적극적으로 시동을 걸어서, 타고난 성질의 스테미너를 충분히 살려서 제압을 해 버렸다. 이것이 바로 스미이 카츠히코 조교사, 이와다 야스나리에게도 첫 G1 타이틀이었던 것. 두 사람의 눈부신 경력은 여기가 그 첫 스타트였던 것이다.
단승 45배, 이른바 8번 인기.
이런 말이 어떻게 우승을 할 수 있을까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게이트가 열리고 5번째 위치에서 달릴때도 아무도 몰랐다.
이 말이 바로 기적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4코너를 돌면서부터 코스모 바르크(コスモバルク)와 접전.
하지만 그는 빠른 스퍼트로 지치지 않고 계속 버텼다.
"하츠 크라이는 가장 바깥쪽! 하지만 선두는 델타 블루스!"
"하츠 크라이는 아직 중단이다! 선두는 델타 블루스!"
타케 유타카가 타고 있던 하츠 크라이는 결국 7착.
사츠키상을 제외하고 전부 3착 안에 들었던 이 말이 1착을 할거라는
그 기대는 어느 순간 무너져 버렸다.
그렇다, 8번 인기로 열심히 달렸던 이와다 야스나리.
그리고 델타 블루스. 바야흐로 첫 도약을 한 것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일본마의 영광을
4세 봄에는 피로의 영향이 있어서 휴양을 했지만, 가을에 복귀하고 난 이후 스테이어 S를 완승했다. 5세를 거치자 진영에서는 장거리라는 최적의 레이스 추구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정을 감행하였다. 남반구 최대의 축제, 멜버른 C의 도전이었던 것. 멜버른 컵은 세계 120개 국가에서 방영되고 있었으며, 세계에서도 7억이라는 사람들이 보는 세계적인 레이스였다. 물론 일본인들 또한 그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문화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단거리 말들이 나오는 오스트레일리아 레이스 체계에서는 거의 2000m를 넘는 거리의 말들이 나오는 경우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 장거리를 달렸던 델타 블루스에게 있어서는 사실 힘든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의 시선도 달랐다. 당시 일본마 2두 중에서 레이스 전에 인기가 있었던 것은 폽록. 아무래도 베테랑 기수 데미안 올리버(ダミアン・オリヴァー)가가 기승하기도 했고, 이전 레이스인 코필드 컵의 직선에서 다리가 눈을 끈 것이 바로 최대의 이유였던 것이다. 게다가 올리버 기수는 아일랜드 말인 미디어 퍼즐(メディアパズル)에 타서 2002년에 멜버른 컵을 이긴 기억이 오스트리아인에게 남아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호주 말 14두, 뉴질랜드 말 3두, 그외 여러 나라의 말 4두.
그리고 일본의 말은 2두.
오스트레일리아의 플레밍 경기장에서 남반구 최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델타 블루스 앞으로 옵니다! 강하다!"
"일본 원 투! 델타 블루스가 앞으로 향해 있다!"
"델타 블루스와 폽 록! 근소한 차이!!"
델타 블루스는 1착. 그리고 폽 록은 2착.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본마들의 1,2착이었다.
이 광경을 본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바야흐로 일본마들이 첫 남반구의 G1을 재패한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났던 것은, 델타 블루스.
전초전이었던 코필드 컵에서의 저평가를 뒤엎고 잘 달려 원투 피니쉬, 즉 한 나라의 경주마들이 승부를 지었던 것이다. 일본 조교마가 남반구의 G1을 제패한 것은 물론 첫 쾌거였다. 이와다 기수는 말을 마중 나온 노잔 팜의 대표, 요시다 카츠미(吉田勝己)를 찾아 소리 높여 울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국민적인 레이스에서, 일본마가 새로운 역사를 쓴 순간이었던 것이다.
나이를 거듭해 너무 유유했던 델타 블루스와,반대로 갸날팠던 느낌의 폽 록은,
어느 쪽이건 1마리만은
해외 원정에 실패했을지도 모릅니다.
2019년 개선문상 인터뷰 중, 조교사 스미이 카츠히코
● 노장,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다
이후 그는 다시 국내로 돌아와 분투를 했지만, 멜버른 컵 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특히 천황상 봄에서는 레이스 도중 편자가 빠져서 12착을 하기도 하고, 설상가상으로 에정되어 있던 킹 조지 6세 퀸 엘리자베스 S, 즉 영국 원정도 중단한 채 휴양을 하게 된 것. 그렇게 다시 휴양 이후 복귀를 했지만, 이번에는 말 인플레인자로 인해서 또 한번의 멜버른 컵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후에도 홍콩 컵 등 그는 원정 준비를 착실히 했지만, 이 또한 말 인플레인자로 인해 1개월 회피를 하는 등, 그의 말로는 순탄치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그는 8세라는 나이, 메구로 기념(目黒記念)에서 16착으로 대패하며 쓸쓸히 퇴장을 하게 된다. 지금은 노잔 호스 파크에서 장애물 넘기 경주마로 이용되었으며, 21년부터는 오카야마 현의 올드 프렌즈 재팬으로 이동하면서 조용한 여생을 살게 된다.
(중략)감각적으로는 3~4마리만으로
달리고 있던 느낌이었습니다.
밖에서 오는건 폽 록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기고 싶다는 뜻이 강했습니다.
일반 G1의 기수로써 기승한 것인데,
승리로 멜버른 컵의 역사의 규모에 놀랐습니다.
2009년 10월, 이와다 기수의 인터뷰 중.
이것은 시작은 미약했으나, 일본보다도 세계에서 명성을 떨친 어느 경주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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