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년월일 | 1987년 4월 11일 |
성별 | 수컷 |
조교사 | 릿토(栗東)ㆍ오쿠히라 신지(奥平真治) |
생산지 | 홋카이도 다테(伊達)ㆍ메지로 목장(メジロ牧場) |
경주성적 | 19전 7승 |
인기는 압도적이나, 석패(惜敗)의 포즈
맥퀸을 깨트려 타카라즈카 비원의 V
2년 연속 코바(古馬) 여왕의 딸 도벨의 탄생도 수긍
● 일생에 큰 영향을 끼친 혈통
87년의 메지로 군단은 일본 경마사에서 빠질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첫번째는 군단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던 메지로 맥퀸. 두 번째는 경이로운 대도주로 역대급 아나우마가 되었던 메지로 파마. 그리고 마지막이 유명 야구선수 놀런 라이언에서 이름을 따온 그 말, 메지로 라이언이었던 것이다.
셋들 중에서 가장 늦게 태어난 그였지만, 당시 조교사였던 오쿠히라도 이전에 메지로 알탄(メジロアルダン)과 비교하면 평범하게 보이지만 오픈은 갈 수 있을 것이라 언급하였고, 심지어 그 해 태어난 생산마들 중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아 기대가 되는 유망주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경마의 신으로도 불리었던 오오카와 케이지로(大川慶次郎) 또한 "앰버 샤다이의 이상형" 이라고 할 정도로 인지도는 높았었다.
여기서 잠시 그의 혈통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의 아버지는 앰버 샤다이(アンバーシャダイ). 비록 중상을 5세 가을에 처음으로 이기긴 했지만, 총획득상금으로 역대 1위를 찍은 명마였고, 또 그의 어머니 메지로 체이서(メジロチエイサー)의 아버지 메지로 산만(メジロサンマン)은 샤다이에 비하면 두각을 드러내는 경력은 아니었지만, 산만 또한 5세 가을에 중상을 이긴 경력이 있었다. 게다가 어머니 메지로 체이서는 암컷답지 않게 봄 텐노쇼에 나온 말이지만, 첫 승리를 올린 것은 데뷔해서 9번째 레이스. 그 사이 1, 2위 인기를 8번이나 했음에도, 좀처럼 이기지 못한 말이었던 것이다. 즉 부모 모두 능력을 뒤늦게 발휘하는 이른바 늦깎이 혈통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이 혈통이 라이언에게 있어 큰 족쇄가 될 것이라고는 당시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 쉽지 않은 G1의 길
그렇게 큰 그릇이 될 것이라 기대를 받았던 그였지만, 그의 스타트는 4번의 레이스 이후에 시작되었다. 그 원인으로는 중간에 골막염으로 인한 휴양이 있었지만, 오히려 휴양 이후에 체격도 좋아졌고, 기수 또한 카시와자키 마사츠구(柏崎正次)에서 당시 인기를 얻고 있었던 젊은 기수 요코야마 노리히로(横山典弘)로 바뀌었기에 그에게 있어선 플러스 요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영원한 동반자 요코야마가 탄 이후부터는 승승장구. 히이라기 상, 쥬니어C를 이어서 사츠키 상의 전초전이었던 야요이 상까지 1착을 해 3연승을 하는 위업을 보여주었다.
조금 여담이지만, 휴양 때 그가 얻었던 것은 체격과 기수 이외에 또 다른 것이 있었으니, 바로 스타일이었다. 골막염으로 휴식을 취할 당시 갈기 밑에 병이 생겼는데, 가려움을 없애려고 목책에 문질러서 갈기가 빠져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이것을 보고 구사 측에서는 바싹 깎아버리게 되니, 이것이 바로 '라이언 컷'. 이 스타일은 그에게 있어서 은퇴 이후로도 계속 이어지게 된다. 어쨌든, 진영 측에서는 3연승을 찍은 그를 보고, 충분히 G1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여 3세 말들의 클래식 트리플 크라운 루트였던 사츠키, 더비, 킷카쇼 노선을 이어나가게 된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여기서부터가 바로 그의 고전이 시작된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사츠키 상은 하쿠타이세이(ハクタイセイ)에게 밀려 3착, 일본 더비에서는 입장객이 역대 최대에다가 인기 1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네스 후진(アイネスフウジン)에게 0.2초 차이로 2착. 심지어 킷카쇼에서는 하쿠타이세이나 아이네스 후진이 전부 부상으로 회피를 했지만, 그의 라이벌이자 동기었던 메지로 맥퀸이 우승을 하여 그는 3착으로 전부 아쉬운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물론 중간에 교토신문배(G2)에서 우승을 했지만, 지금까지의 레이스에서 G1에서는 우승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진영에게도, 팬들에게도 아쉬움이 남았을 따름이었다.
이런 결과를 보여주었기에 라이언이 정말 큰 그릇일까 의심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가지고 있는 재능이 결과에 연결되지 않는 평범한 말 등 부정적인 이야기도 들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수 요코야마는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언제나 "라이언이 가장 강하다"라고 하면서 그를 믿었고, 사츠키 상 이후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말의 힘을 믿는 것, 단지 그것뿐입니다.
평상시처럼 달려 주어서
질 리가 없다라는 기분으로 탄다면야,
당황할 것도 없으니까요.
(중략) 그래서 더비에 타면서부터는
더욱 압박감에 강해졌습니다.
덕분에 올해 사츠키 상의 패독1은
굉장한 성원이었지만,
냉정하게 있을 수 있었습니다.
기수 요코야마 노리히로의 인터뷰. 출처는 「Sports Graphic Number 244号」
● 메지로의 지원에도 석패, 아리마 기념
이대로 가다간 미완성된 그릇, 혹은 무관의 제왕으로 불려질 그를 위해, 진영은 어떻게든 그를 이기게 하도록 손을 쓰게 되었다. 그 결과 찾아낸 방도가 아리마 기념. 원래대로라면 메지로 맥퀸이 출주하여 확실하게 이길 수 있었지만, 라이언이 승리하는 걸 보고 싶다는 메지로 목장 총수의 의향으로, 맥퀸의 조교사 이케 야스오(池江泰郎)는 회피를 결정하였다.
게다가 당시 아리마 기념에 나왔던 강호라면 오구리 캡. 엄청난 적수이긴 했지만 은퇴를 눈 앞에 두고 있었고, 가장 최근에 뛰었던 레이스라면 텐노쇼나 재팬컵이 있었는데 둘 다 6,11착이라는 부진을 보여주어서, 이제 오구리 캡은 끝났다라는 이야기도 들릴 정도였다. 이렇게 메지로 라이언이 G1에서 이길 상차림은 전부 갖추어졌고, 남은 것은 확실하게 이기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승기를 잡은 것은 오구리 캡이었다. 끝이라고 생각하였던 오구리는 4코너에 들어가면서 라스트 런으로 선두를 차지하였고, 그 뒤를 라이언이 쫓아갔지만, 결과는 0.1초 차이로 2착. 중계에서는 오구리 1착이라 외치며 흥분하였고, 나카야마의 17만 관중들은 하나같이 오구리 캡을 외치면서 이 날은 오구리 캡의 감동 드라마가 되어 버리게 된 것이었다.
모두가 오구리 캡을 외치는 유독 라이언을 외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위에서 잠시 언급한 경마의 신 오오카와 케이지로였다. 방송에서 해설을 맡았던 오오카와의 목소리가 경기 중계 중 "라이언!" "라이언!!" 이라고 외치는 것이 전국으로 방송이 된 것. 이 방송으로 "비디오 녹화 중 이상한 아저씨가 라이언이라고 외쳤다"라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오오카와 본인은 아나운서가 오구리만 외치고 있어서 2착으로 뛰는 말도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주장하였다만, 정확히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밥상을 차려 주어도 먹지 못했던 라이언은 부진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 이후 나카야마 기념에서는 유키노 선라이즈(ユキノサンライズ)를 따라잡지 못해 2착. 봄 텐노쇼에서는 라이벌이었던 메지로 맥퀸이 우승을 하며 4착. 이 여파로 인해 메지로 목장 관계자들은 요코야마를 내리라는 말도 있었지만, 요코야마가 자신의 책임이라고 간청하고, 메지로 목장 총수의 신임에 힘입어 요코야마는 그의 동반자로 계속 남아있게 된다.
● 마침내 G1을 승리하다, 91 타카라즈카
그렇게 하여 요코야마와 그에게 주어진 기회가 바로 91년도 타카라즈카 기념. 상대로는 라이벌 메지로 맥퀸이 있었지만, 거리는 2200m 중거리. 거리적인 면으로는 맥퀸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있었다. 요코야마 또한 "여기서 지면 라이언이 강하다고 두번 다시 말하지 않겠다" 라고 할 정도로 각오를 굳혔다고 한다. 그에게도, 기수에게도 있어서도 질 수 없는 경기였던 것이다.
이기고 싶었다. 어떻게든 이겨야만 했다.
그렇기에 그는 평소와는 다르게 몸을 앞으로 뻗혔다.
"오늘은 메지로 라이언인 3번대로 들어옵니다"
지금까지는 후방에서 대기하는 전략을 취했다면,
이번에는 3코너부터 단숨에 페이스를 올려 선두로 나가는 전략.
그 전략이 먹혀들어가기 시작했다.
"메지로 라이언이 선두다! 화이트 스톤이 2번대!"
점점 앞으로 나가면서 마신 차가 넓어진다.
"메지로 라이언 선두! 맥퀸이 쫓아오지만, 메지로 라이언이 골인!"
결과는 맥퀸과 1마신 반 차이. 그리고 들려오는 중계의 한마디.
"메지로 라이언 요코야마 기수! 메지로 맥퀸을 깨트렸습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그가 비원하던 첫 G1 승리. 완승.
항상 라이언이 강하다고 믿었던 요코야마가 당당히 가슴을 펼 수 있었다.
이후 92년도 타카라즈카는 메지로 파머, 93년도는 메지로 맥퀸이 우승.
즉, 메지로 목장의 3년 연속우승인 「메지로 기념」의 첫 스타트를 끊은 것이었다.
● 씨수마로서 성공적인 여생을
그렇게 당당히 G1을 우승한 그였지만, 아쉽게도 그의 경주마 생활은 얼마 남지 않은 적신호가 들어오게 되었다. 바로 여름 휴양에 들어오면서 굴건염이 발생한 것. 원래는 텐노쇼를 목표로 하고 있었지만, 회피한 대신 연말의 아리마 기념에 출주하였으나 결과는 12착으로 참패. 이후 AJCC에서 6착을 하고, 닛케이상에는 우승을 했지만 다시 굴건염이 재발해 은퇴를 하여 씨수마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타이틀이 하나뿐이었기에 씨수마로 들어간 후엔 주목도가 낮았지만, 초년도부터 메지로 도벨(メジロドーベル), 메지로 브라이트(メジロブライト)라는 2 마리의 G1마를 배출하면서 인기가 높아졌다. 국내산 말로서는 심볼리 루돌프 이래로 6년 만에 씨수마 랭킹에 들어온 것이었고, 교배 비용도 처음에는 150~60만까지 하락했지만, 97년도에 들어오면서부턴 교배 비용이 국내산 씨수마 최고액인 613만까지 거래되었다고 한다. 같은 메지로 동기들 중에서는 경주마로서의 활약은 적었으나, 반대로 씨수마로써의 성적은 월등히 높았다는 것.
씨수마로서의 은퇴는 여름 하코다테에서 팬 앞에 등장. 최고의 파트너였던 요코야마 노리히로 기수와 함께 잔디 코스를 달리며, 큰 스탠드를 열광시켰다. 언제까지라도 팬에게 사랑받는 메지로 라이언은 만년을 행복하게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2011년 메지로 목장이 폐쇄되면서, 레이크 빌라 목장에서 여생을 보내게 되고 2016년 3월 17일 세상을 떠나게 된다.
지금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은 라이언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저를 성장시켜 준 좋은 파트너였습니다.
클래식을 이기지 못했던 것은, 제가 미숙해서
라이언이 이기지 못했던 것뿐입니다.
레이스는 쉽지 않다는, 그런 엄격함을 알려 주었습니다.
기수 요코야마 노리히로의 인터뷰
'영광의 경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빛을 발하다, 델타 블루스(デルタブルース) (1) | 2023.05.16 |
---|---|
더비에서 세계까지, 키즈나(キズナ) (0) | 2023.05.11 |
총알 슛 같았던 스에아시, 사커 보이(サッカーボーイ) (1) | 2023.05.06 |
스프린터의 혁신, 사쿠라 바쿠신 오(サクラバクシンオー) (1) | 2023.04.29 |
슬픈 경마사의 1페이지, 린덴 리리(リンデンリリー) (0) | 2023.04.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