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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경주마

슬픈 경마사의 1페이지, 린덴 리리(リンデンリリー)

by pastsell 2023.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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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1988년 3월 16일
성별 암컷
조교사 릿토(栗東)ㆍ노모토 아키라(野元 昭)
생산지 홋카이도 우라카와(浦河)ㆍ무코베츠 목장(向別牧場)
경주성적 7전 4승

 

불석신명(不惜身命), 여왕배에 핀 백합

단 7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전설

말도 기수도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고 신념을 다하다

 

이것이 바로 밀 조지산 계보도. 출처는 경마FM 게임 위닝포스트8.

 

● 밀 조지의 혈통, 그러나 첫 항착 제도 피해자

데뷔에서 은퇴까지 불과 7전.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커리어였지만, 경주마 린덴 리리의 인생을 논하자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들 수 있다. 그녀가 태어난 곳은 홋카이도의 무코베츠 목장. 81년도 당시 더트 1600m인 도쿄 3세 유슌 암말 경주에서 우승하였던 라돈나 리리의 자식이 태어난 것이었다. 라돈나 리리(ラドンナリリー)가 새끼를 낳은 경위는 다음과 같았다.

당시에는 다리가 긴 밀 조지(ミルジョージ)산 말이 잘 달린다라는 평가가 떠돌았다. 미국에서 구입한 밀 조지는 경주마 당시엔 큰 활약이 없었으나, 은퇴한 이후 번식마가 되면서부터는 유명 인사가 된 것이었다. 재팬 컵에서 그 유명한 황제 심볼리 루돌프와 사투를 벌여 결국 2착을 취한 록키 타이거(ロッキータイガー), 오구리 캡이나 슈퍼 크리크와 같이 헤이세이 3강이라 불리던 이나리 원(イナリワン)도 이 밀 조지의 피를 타고난 것이었다. 밀 조지산 말들의 특징은 잔디나 더트, 그 어디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잔디보다도 더트 경기를 주로 하는 지방 경마에서는 한때 밀 조지산 말이 압도적이었을 정도로 그만큼 영향력이 뛰어난 것이었다. 라돈나 리리 또한 이 혈통을 타고났으며, 특히 라돈나 리리는 다리가 긴 새끼를 낳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린덴 리리가 세상에 나온 것은 경마사에 있어선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데뷔전 때의 린덴 리리. 출처는 TV도쿄의 방송 「土曜名馬座」

 

그런 혈통을 타고나서였을까,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과감히 보여주었다. 데뷔전이었던 신바센에서는 9번 인기를 얻었지만 신경쓰지 않고 1착으로 들어왔으며, 그 다음 경기인 코바이 스테이크스(紅梅ステークス)에서도 훌륭히 선두로 골인하였다. 하지만 직선 코스에서 비스듬히 달려 다른 말들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결국에는 13착에 그치고 마는 안타까움을 보여주었다.

이 진로 방해에 대해서는 더욱 아쉬움이 남는 이유가 있었다. 일본에서 진로 방해, 즉 항착 제도(降着制度)가 도입된 것은 1991년부터였는데, 이 해에 도입된 항착 제도가 처음으로 1위 입선마에게 적용된 케이스이기 때문이었다. 이전까지는 진로 방해 등 부정행위가 있을 경우엔 대부분 기수의 기승 정지 처분 등 제재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면으로 보면 그녀에게 있어선 아쉽다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업친 데 겹친 격이랄까. 진로 방해와 함께 그녀에게 크나큰 시련이 찾아 왔으니, 바로 코바이S 레이스 이후 골절이 판명된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봄의 암말 클래식 등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그녀의 봄은 단 2경기만으로 그치게 된 것이었다.

 

90년도 일본 중앙경마 CM 중 오카 쥰이치로

● 천재와의 만남, 오카 쥰이치로

그 후, 그녀는 여름에 복귀하여 다시 자신의 기량을 거침없이 보여주었다.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500만 이하 경기에서 더트전으로 4착, 2착 등 착실히 쌓아 나가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당시 기수는 일본 경마사에 있어서 모를 수가 없는 명 기수 타케 유타카(武豊). 하지만 타케 기수가 미국에서도 레이스를 뛰게 되면서, 결국 그녀의 파트너는 요절한 천재 기수. 바로 오카 쥰이치로(岡潤一郎)와 만나게 된 것이었다.

생애 성적 2177전 225승. 중상은 5승을 찍었던 오카 쥰이치로.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잊혀졌을지도 모르지만, 몇몇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타케 유타카의 라이벌이라 불릴 정도의 기량이 있는 사내였다. 타케 기수보다 1년 늦게 데뷔한 그는 한 해에 44승을 찍으면서 최다 승리 신인 기수상을 받게 된다. 심지어 사상 최초로 5연속 기승 5연승이라는 전대미문의 경력을 삿포로에서 찍으면서, 이후 10년 이상 아무도 깰 수 없는 위업을 달성한 엄청난 인재였던 것이었다.

이런 명기수가 그녀와 만나게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한 에피소드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후술할 91년도 엘리자베스배 당시의 린덴과 오카 기수. 출처는 60years 명마전설 저서.

 

오카 군이 린덴 리리로 엘리자베스 여왕배를 이긴 후,

교토의 술집에서 그가 나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타케 선배가 저의 기승을

조교사에게 부탁했다고 하더군요"

그 때 확실히, 리리에 탔던 타케 유카타는 미국에 가 있었다.

갑작스럽게 오카 군이 기승한 것이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 타케 군에게 그것을 물어보니,

"그렇지 않아요. 오카 군이라면 이길 거라고

조교사가 판단한 것이겠죠."

라며, 그는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이쥬인 시즈카(伊集院 静), 출처는 그의 저서 「半人前が残されて」

 

 

 

 

● 경주마로서의 모든 인생을 엘리자베스에

그렇게 태어난 훌륭한 콤비였지만, 아쉽게도 뛴 경기는 단 2개에 그치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들이 나간 경기는 G2 로즈 스테이크스. 사실 이 경기는 진영 측에서 출마 투표에 떨어질 각오를 하고 넣었던 엘리자베스 여왕배의 트라이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훌륭히 제패를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경기. 당연하겠지만 엘리자베스 여왕배였다.

 

"이소노 루블(イソノルーブル) 선두로 들어갑니다!"

직선 코스로 들어오면서 모두들 스퍼트를 올리기 시작한다.

딱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던 린덴 리리도 박차를 가하기 시작.

그리고 그녀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밖에서 린덴 리리! 밖에서 린렌 리리가 옵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선두를 밟기 시작. 점점 마신 차가 벌어진다.

"가운데 카사 블랑카! 하지만 린덴이다, 린덴이다!"

하지만 카사 블랑카는 따라 잡지 못한다, 그리고 남은 100m를 돌파하 당당히 골인.

그렇게 다음 중계의 말이 이어졌다.

"오카 쥰이치로와 린덴 리리! G1 제패!"

1번 인기를 얻은 말로써, 당당히 1착으로 V.

2착이었던 야마노 카사 블랑카를 2마신 차로 제압.

이것이 바로 그녀에게도, 그에게도, 그리고 조교사 노모토에게 있어서

사상 첫 G1을 찍은 것이었다.

 

오른쪽의 빨간색으로 구분된 곳이 바로 굴건. 출처는 일본 경마 신문.

 

그러나 무언가를 얻으면 무언가를 희생해야 하는 법. 등가교환의 교칙처럼 그들에겐 크나큰 희생이 따라야만 했다. 우선 그녀가 희생한 것은 경주마로서의 인생이었다. 경기 직후 오카 기수는 갑자기 말에서 내리게 되는데, 진단 결과 레이스 중 그녀의 오른쪽 앞 다리가 굴건염으로 인하여 부분 단열이 된 것. 굴건이란 말이 달릴 때 몸통을 앞으로 추진시키기 위해 다리를 구부려 근육을 수축시킬 때 작용하는 힘줄이었다. 그만큼 말의 경주 능력에 있어서 중요한 부위였지만, 결국 그녀는 이 부상으로 인해 경주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서 잔디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 레이스로부터 1년 정도가 경과한 1993년 1월. 오카 기수가 희생한 것은 바로 자신의 인생이었다. 교토 경마장의 제 7레이스, 신바센. 그가 탄 말은 바로 오기 지니어스(オギジーニアス). 이 경기가 그도, 팬들도, 그 누구도 마지막일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4코너에서 다이 쥴리엣(タイジュリエット), 그리고 맥스 티거(マックスディガー), 그리고 그의 지니어스가 공방전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지니어스는 미숙하였기에 반응이 느려 후퇴하였고, 그 직후 왼쪽 뒷다리가 흔들거리는 상태가 되어, 왼쪽 뒤측으로 밸런스가 무너지게 된다. 그러나 이 무슨 불운이었을까. 이 때 반동으로 인해 그의 헬맷이 벗겨지면서, 뒤에서 오는 말을 피하지 못하고 무방비로 머리를 당하는 낙마 사고를 당하게 된다. 두개골 골절 등으로 의식불명의 상태가 되어 응급 처치를 받았으나, 결국 그는 2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린덴 리리 또한 이후 번식마로써 살아가다가, 결국 2008년 그를 따라 세상을 떠나게 된다. 경마 팬들에게 있언 슬픈 기억이겠지만, 이들의 행보는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 수가 없는 경마사의 1페이지가 아니었을까.

이것은 장래가 총망하였던 어느 경주마와 어느 기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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