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광의 경주마

G1에 목말라했던 사나이, 페노메노(フェノーメノ)

by pastsell 2023. 3. 25.
728x90
반응형
생년월일 2009년 4월 20일
성별 수컷
조교사 미호(美浦)ㆍ토다 히로후미(戸田 博文)
생산지 홋카이도 비라토리(平取)ㆍ오이와케 팜(追分ファーム)
경주 성적 18전 7승

 

되살아난 관동의 괴물 군이라 불린 사나이.

키즈나, 골드쉽에게 완승한 말.

사상 3두목의 천황상ㆍ봄 연패를 이룬 그 수말.

비록 영광은 짧았지만, 그 인상은 강렬하였던 그의 인생을 알아보고자 한다.

 

● G1과는 인연이 없던 마메쨩

포르투갈어로 '초현실적 현상', 또는 '괴물'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페노메노. 하지만 실제로는 노력과 좌절을 거듭한 끝에 영광을 손에 쥐었던 이 말은, 홋카이도의 오이와케 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과거 나이스 네이처 다음으로 G1에 20회로 최다 출전 횟수를 자랑하였던 스테이 골드. 또한 장래에 그와 대결을 펼칠 그 유명한 골드쉽도 같은 아버지였다. 골드쉽과의 차이라면 골드쉽은 속도가 결여되어 있었지만, 반면에 페노메노는 아버지에게 스테미너를, 어머니에게는 마력형을 물려받은 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그의 애칭은 마메쨩(マメちん). 어렸을 적부터 칠흑의 마체라 검은 콩을 연상했다는 이유로 그런 애칭이 붙어졌다고 한다. 그 또한 그 애칭을 좋아했으며, 이것은 추후 팬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애칭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첫 무대는 2011년 도쿄 신바센(新馬戦) 2000m전. 경기에서 소질은 명확히 보였지만, 이후 호프풀 스테이크스에서 7착, 다음 해에는 사츠키쇼의 트라이얼이었던 야요이쇼(弥生賞)에서 6착을 하는 등 결국 패전으로 인해 사츠키쇼에 나가지 못하였다. 이후 아오바쇼(青葉賞)를 제압해 임한 더비에서는 1착으로 잠시나마 명예를 세웠다. 그렇게 그는 일본 더비리고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일본 경마사에서 유명한 징크스가 그 앞길을 가로막았다.

 

 

아오바쇼에서 이긴 말은 더비에서 이길 수 없다

일본 경마사의 유명한 문구

 

레이스 수준이 달라 싸우는 상대가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1개월 동안 후츄 2400m를 2회 경험하는 것은 가혹하다 등등 여러 가설이 존재하였기에, 그 징크스는 그에게 있어 갈림길이 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징크스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G1 일본 더비에 나가기로 출사표를 던진 것. 굳게 마음을 먹고 더비의 길을 밟았지만, 역시나 징크스의 영향이었을까. 당연하다시피 그는 인기 투표에서 5번째를 찍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당시 도쿄 경마장은 초고속 마장이라 선행하는 말들이 앞을 조금 남기고 결착을 짓는 경우가 많아서, 선행을 하지 않으면 이기기 힘든 상황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4코너에서 딥 브리란테(ディープブリランテ)가 골을 향해 필사적으로 도주했지만, 페노메노가 중간에서 강습. 그렇게 차이를 좁혀서 접전을 하였지만, 사진 판정으로 결국 2착이라는 아쉬움을 남겨야만 했었다. 그 영향이었을까, 그 이후 가을 천황상에서 겨우 2착으로 달리는 등, 3살말로써는 건투했으나 G1에는 인연이 없는 이미지로 굳혀졌다.

 

 

● 잠시 동안의 G1, 그리고 계인대염

 

 

그렇게 G1을 원했던 그는 4살을 맞이했고, 봄이 찾아왔다. 그 해의 첫 무대는 닛케이쇼(日経賞). 마지막 직선에서 먼저 빠져나온 카포티 스타(カポーティスター)를 따로잡아 1착으로 완승. 그렇게 다음 무대인 텐노쇼에서 바야흐로 G1이라는 소원 성취를 이룰 때가 온 것이었다. 압도적인 인기를 얻었던 골드쉽이 더 이상 뻗지 못해 발버둥을 치던 중, 좋은 위치에서 빠져나온 그는 스모의 요코즈나가 눌러 지르듯이, 제압을 하여 비원하던 첫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비록 다음 경기였던 타카라즈카 기념에서는 4착을 차지했지만, 이 텐노쇼로 인해 한층 더 비약할 것이라고 모두가 그리 생각하였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가을 경마를 맞이하기 전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으니, 바로 계인대염이 발증한 것이었다. 계인대염. 그것은 발목 뒤 종자골을 지지하는 인대가 늘어나는 병이었다. 이 계인대에 부상을 당하게 되면 염증이 생기게 되어 붓고 열이 나 절룩거리게 되는데, 치료 및 휴양을 취하지 않으면 경주능력에 심각한 영향이 찾아올 수 있었기에, 결국 그는 장기휴양을 부득이하게 취하게 되었다.

 

 

 

● 텐노쇼 연패(連覇), 그러나...

 

그렇게 겨우 복귀한 것은 그가 5살이 된 봄. 복귀전이었던 닛케이쇼에서는 좋은 위치로 추격하였지만, 결국 5착으로 패배하였다. 이후 연패를 목표로 하여 임했던 텐노쇼. 상황이 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여, 팬들의 지지는 떨어져 4번 인기로 맞이하게 되었으나, 추억의 무대에서 그는 활약하였다. 출발 직전 골드쉽이 난동을 부려 스타트가 늦은 운도 있었지만, 그는 좋은 위치의 인에서 직선으로 밖으로 나와, 맹추격하는 각 말과의 결전을 제압하여 1착. 불과 2년 전만 해도 "이 말에게는 거리가 맞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라며 킷카쇼를 회피한 경위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 말보다도 장거리전을 훌륭히 해낼 현명한 말로 성장한 것이었다.

 

휴일 다음 날 닛케이쇼에서는 지나치게 기분이 고조되어 기대에 어긋난 결과가 되었습니다. 모두 믿어 주지 않았을지 모르겠다만, 이번 결과는 잘 해낸 보람이 있었습니다. 플러스 10kg 체중을 확인했을 때, 오늘은 해낼 거라는 확신이 가까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토다 히로후미(戸田 博文)

 

 

이것은 대단한 결과였다.

키즈나와 그의 콤비였던 유명한 기수인 타케 유카타.

그리고 롱 스퍼트로 압도적 존재감이었던 골드쉽.

또한 계인대염이라는 지병을 겪어 오랜만의 복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근년 최고의 멤버들을 제치며 사상 3두목이라는 봄 텐노쇼 연패를 이룬 것이었다.

 

 

후방의 강적에게 꿀리지 않고, 자신의 경마를 관철한 끝에 얻은 쾌거. 믿고 힘차게 나아가 그에게는 아직 뛸 수 있는 경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렇게 그는 이후 가을 텐노쇼에 전념하기 위하여 휴양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맞이한 가을 텐노쇼. 하지만....

 

 

결과는 14착. 완패였다.

심지어 다음 경기인 재팬컵에서는 8착. 다음 아리마 기념에서는 10착...

하지만 그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었다. 바로 닛케이쇼와 텐노쇼

그 두 경기에서의 우승으로 각 3연패를 하는 것이 그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었다.

하지만, 신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른쪽 앞 다리는 계인대염, 그리고 왼쪽 앞 다리에는 굴건염.

이것은 닛케이쇼 8착에, 텐노쇼 불참.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의 은퇴가 확정된 것이었다.

스테이 골드 산 말로써의 쓸쓸한 마무리였지만, 그래도 체면만큼은 다른 라이벌들과 비교하면 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었다. 결국 현재는 종모마가 되었으며, 지금은 레쿠스 스탠드로 이동.

이것은 한때 G1에 목말라하며 쾌거를 이루었지만, 결국 그 빛은 오래가지 못한 한 명마의 이야기.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