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년월일 | 1987년 3월 2일 |
성별 | 수컷 |
조교사 | 릿토(栗東)ㆍ오쿠보 마사아키(大久保正陽) |
생산지 | 홋카이도 다테(伊達)ㆍ메지로 목장(メジロ牧場) |
경주성적 | 38전 9승 |
수상이력 | 1992년 JRA상 최우수 4세 이상 수말 1992년 최우수 부내국산마 |
나홀로 여행가 파머가 간다
경이로운 다크호스, 춘추 그랑프리 제패
역사상에 남을 예상외의 승리 2회
이런 경력을 가진 말을 꼽자면, 메지로 파머가 해당하지 않을까
● 스타트는 순탄하지 못했던 명문의 혈통
1987년. 이 해는 경마사에 있어서 특별한 해라고 할 수 있었다. 해외 유명인들의 이름을 붙이며 활약한 말들이 속출했던 메지로 군단이 탄생한 날. 그 중에서 미국의 유명 골프 선수 아놀드 파머에서 이름을 딴 한 마리의 수말이 있었으니, 바로 메지로 파머였다.
메지로라는 명가의 혈통으로 태어난 그였지만, 세상은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와 같은 해애 태어났던 메지로 맥퀸, 그리고 메지로 라이언이라는 존재가 너무나 압도적이었던 것. 게다가 아버지 메지로 이글(メジロイーグル)은 교토 신문배를 제패하였지만 8대 경주와는 인연이 없었고, 어머니는 4전 1승으로 딱히 큰 전적을 보이지 못했던 메지로 판타지(メジロファンタジー). 순혈은 순혈이었지만 맥퀸과 라이언이라는 존재와 비교하면 약했기에, 그의 시작은 다른 메지로들에 비하면 조용한 편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메지로의 혈통. 만성 혈통에 비해서 데뷔가 빨랐고, 2번 2착을 거치긴 했지만 미승리전과 오픈 코스모스상을 연승.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엘리트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파란만장한 시작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4살이었던 그는 당당히 오픈 등급에서 달리기 시작했지만, 많은 경기들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강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중간에 있었던 교토 3살 스테이크(京都3歳ステークス)경주 후에는, 왼쪽 뒷다리에 골절이 있다고 판명되어 장기 휴양을 취했지만, 6개월 이후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코타테 기념(函館記念) 이후 다시 골절이 생겨 또 휴양을 거치게 되었다. 이렇게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그는 결국 복귀전에서도 12착을 하게 되니, 그에게 관심을 가지던 사람들은 점점 하나 둘씩 사라지게 되었다.
● 잠시간의 장애물 종목, 그리고 복귀
결국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진영은, 평지에서는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그를 장애물 경기라는 새로운 종목에 투입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그가 장애물 경기에 나간 것은 단 2번. 첫 경기에서는 압도적인 1번 인기에 6마신 차로 승리하고, 다음 경기에서도 2착을 찍는 등 경기 결과만으로서는 나쁘지 않았지만, 문제는 경기의 과정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난 후의 그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었는데, 그것은 장애물을 뛰어 넘는 것이 서툴렀기 때문.
1차전은 무사히 끝마쳤지만, 2차전은 다리에 흰 페인트를 뭍히고 돌아왔습니다. 장애물에 발라져 있던 페인트 흔적이죠. 레이스 도중 다리를 부딪쳤습니다. 이대로 장애물 경기를 게속한다면, 언젠가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해서 그만두었습니다.
조교사 오쿠보 마사아키와의 인터뷰 중. 출처는 야후 뉴스.그렇게 장애물 경기를 떠난 그는 다시 평지로 돌아오게 되었고, 시대는 92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 장애물 종목이라는 종목으로 인하여, 지금까지와 다른 그의 전환기가 시작되는 것을.
● 장애물, 그리고 야마다로 아나우마로 변신
우여곡절 끝에 다시 평지에서 달리기 시작한 그는, 놀랍게도 3번째 경기인 니가타 대상전(新潟大賞典)에서 1착을 차지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 다음 경기는 G1 타카라즈카 기념이었는데, 여기서도 1착으로 완승을 하여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 가능성이 제로였던 말이 이렇게 대박이 될 줄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심지어 이것은 마주조차 예상하지 못한 우승이었기에, 목장에서의 응원 관전도 없었고, 기념 촬영 등도 간소하게 치뤄질 판이었으니.
이것은 엄청난 파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3마리 중 9번째 인기였던 그가 단쇼1 2310엔인 아나우마로 변신.
G1 실적부족, 장애물 복귀, 체중 3kg 증가.
이런 사람들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생 첫 G1 우승을 한 것이었다.
그는 어째서 이렇게 변화를 할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요소가 있지만 크게 2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장애물 종목의 경험. 그는 장애물 종목으로 인해서 엉덩이부터 뒷 다리에 걸쳐 근육이 단련된 볼륨이 나왔다. 또한 정신적이라는 면으로도 성장을 해서 큰 효과를 발휘한 것이었다. 장애물을 하기 이전에는 컨디션이 어땠건 간에 그냥 달리는 것에 집중했지만, 장애물을 경험한 이후부터는 완급을 조절하는 법을 알게 되어서 조교적인 면으로도 이전보다 더 안정성 있게 가능했다고.
두 번째는 야마다 타이세이(山田泰誠) 기수와의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지금이야 우마무스메 등으로 인해 파머가 도주마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원래 파머는 도주마가 아니었다. 하코타테 기념부터 도주 주법을 이용하면서 서서히 힘을 길러 나간 것. 게다가 그는 다른 말들과 비교하면 특이한 주법을 가지고 있었다. 목을 세우며 달리지를 않나, 기수의 제어는 툭하면 무시하고 앞으로 끄는 버릇을 가지고 있어서 기수들에게 있어 상당히 다루기 힘들었던 말이었던 것. 그런 그를 야마다가 리드하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게 된다. 야마다 또한 연간 25승을 넘은 적이 없던 기수였지만, 끄는 버릇으로는 더한 말을 몰아본 적도 있었고, 고삐는 거의 허벅지에 놓을 정도로 길게 늘여잡는 대신 자신의 하체 힘으로 통제하는 등 기발한 태크닉으로 둘의 콤비가 잘 맞았던 것. '하이 페이스에서 대도주' 이때부터 그의 스타일은 이렇게 변하게 된 것이었다.
훌륭히 달려만 준다면야 그것만으로도 족했죠. 머리가 높아서... 타기 힘든 것도 있었고요. (중략)
파머의 경우엔 파머의 페이스로 맡기는 편이지만, 조금 매듭을 지어서... 뭐라고 할까, 가능한 그 페이스에 따라갑니다. 그러면 마지막까지 확실히 해주어서 좋은 성적이 나오니까요.
기수 야마다 타이세이와의 인터뷰. 출처는 名馬物語Ⅱ 다큐멘터리.
● 사상 최고의 변수로 명마가 되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인상을 주면서 그의 가을이 시작되었지만, 교토 대상전, 가을 텐노쇼 등 전부 패배를 하게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이긴 그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에게 기대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어디까지나 타카라즈카는 다들 운이라고 생각했고, 심지어 텐노쇼 당시에도 인기 10번이 되었던 것. 보통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우승을 하면 1~3번으로 인기를 얻는 것이 기본이었지만, 그만큼 사람들은 그에게 딱히 기대를 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텐노쇼 당시 17착이라는 불명예를 찍게 되었다.
결정적으로는 텐노쇼 당시 야마다가 아닌 후지타 신지(藤田伸二) 기수가 탔는데, 이날 하필이면 파머가 폭주를 강행하여 이를 막지 못해 결국 서로 자멸. 그래서 바보 콤비라고 불리며 토카이 테이오의 트리플 크라운을 망쳤다는 등 크나큰 불명예를 얻게 된다. 그런 와중에 다음으로 맞이한 경기는 아리마 기념.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이 때 파머의 인기는 15번째. 꼴찌 다음으로 낮은 순위였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또 엄청난 폭풍이 찾아왔을 줄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는 시작하자마자 누구보다도 빠르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다이타쿠 헬리오스(ダイタクヘリオス)가 뒤쫓아 선두를 치열하게 공방.
그런 모습을 보며 그 어느 누구도, 결국 텐노쇼 같은 꼴이 될 거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메지로 파머 대도주! 타카라즈카의 재현인가?"
400m를 남기고 헬리오스는 결국 속도가 감속.
그렇게 그는 독주를 하였지만, 바로 그때. 그 뒤로 한 마리의 말이 달려온다.
"메지로 파머 선두! 메지로 파머 선두! 자, 레거시가 왔다!"
마지막 직선 코스에서 레거시 월드(レガシーワールド)가 달려오면서 치열하게 공방.
거의 따라잡힐 듯 했지만, 둘이 나란히 골인.
그렇게 결과는... 코 차이로 메지로 파머가 1착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어지는 중계의 한마디.
"히사마사루도, 토카이 테이오도, 그리고 라이스 샤워도 어떻게 된 것입니까. 뜻밖의 전개입니다..."
그렇다. 그는 수많은 강호들을 제치고 1착을 차지하였다.
16마리 중 15번째 인기인 말이 탄쇼는 4940엔, 우마렌은 31500엔.
운빨이라고만 생각했던 말이 역대 4번째로 춘추 그랑프리를 제패.
이것은 같은 혈통인 맥퀸도, 라이언도 해내지 못한 업적이었다.
G1에서 탄쇼 2000만 이상으로 V2를 찍은 말의 탄생이었다.
● 쓸쓸한 마무리, 그의 은퇴
그런 훌륭한 업적을 남긴 그는 이후에도 대도주를 꾸준히 이어가게 된다. 이후 한신 대상전에서는 나이스 네이처를 떨쳐 3000m를 우승. 다음 텐노쇼에서는 메지로 맥퀸과 라이스 샤워라는 강호가 있었지만, 그 둘의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만의 레이스로 3착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그의 한계였던 것일까. 이후 경기부터는 하향선을 찍게 된다. 연패를 노리던 타카라즈카 기념에서는 10착 한 것을 시작으로 패배의 길을 쭉 걷게 된다. 그러다가 8살이 되어 맞이한 첫 경기 닛케이신슌배(日経新春杯)에서는 60.5kg로 핸디캡을 얻게 되었지만, 2착으로 겨우 유지. 이후에는 천황상 등을 노리려 했었지만, 오른쪽 다리의 각부 불안이 발증해 휴양에 들어가게 되고, 결국 1994년 9월 22일, 경주마로서 은퇴를 하게 된다.
저의 모든 것입니다. 지금 제가 이렇게 있는 것도 파머 덕분이니까요. 파머가 없었다면 아마 그만두었을지도 모릅니다.
기수 야마다 타이세이와의 인터뷰. 출처는 名馬物語Ⅱ 다큐멘터리.
그렇게 그는 번식마로서의 생활을 거치다, 2012년 레이크 빌라 팜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같은 혈통이었던 맥퀸이나 라이언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성적인 이미지로 인해 지금도 사랑을 받는 말.
이것이 인기가 없는 G1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멸의 역사상 기록을 가지고 있는 한 명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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